몽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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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2차 송나라 침략 (1) 조어성의 기적
몽케 대칸은 1258년 송나라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명령했다. 그는 군대를 셋으로 나누어 서쪽 사천성 공략은 자신이 직접 지휘하고, 과거 최대 격전지이었던 호북성 무창 방면은 둘째 동생인 쿠빌라이, 운남에서 올라오는 별동대는 현지 주둔군 사령관인 우량하타이가 지휘하도록 했다. 몽골의 대군이 남하하자 사천성의 대다수 성들은 겁에 질려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했다. 그러나 쾌속 진격하던 몽골군은 이번에는 오늘날의 중경 북쪽에 있는 조어성(釣魚城)에서 제동이 걸렸다. 조어성은 양쯔강의 세 지류가 만나는 지점의 험준한 절벽 위에 쌓은 산성이었다. 몽골군은 성의 삼면을 포위한 뒤 동서 양쪽에서 공격을 시작했다. 조어성의 군민 10만 명이 왕견(王堅)의 지휘 아래 똘똘 뭉쳐 몽골의 공격에 대항했다. 왕견은 몽골의 1..
2021.06.15 -
베트남에 몰려오는 전쟁의 먹구름
베트남은 호라즘처럼 몽골 상인들을 학살하거나 버마처럼 멋모르고 몽골을 선제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몽골과의 충돌을 피하려 필사적인 외교 노력을 펼쳤다. 그러나 베트남이 애를 쓴다고 피할 수 있는 전쟁이 아니었다. 몽골의 몽케 대칸은 송나라에 대한 두 번째 침략을 시작하기 한 해 전인 1257년 운남 주둔군 사령관 우량하타이에게 베트남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베트남을 점령해 남쪽에서 송을 치는 또 하나의 공격로를 확보하고 베트남 군민을 대송전쟁에 동원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우량하타이는 국경에 3만 대군을 집결시켜 놓고 베트남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칠 것과 송을 공격할 길을 빌려줄 것을 요구했다. 이것을 사실상의 항복 요구로 받아들인 베트남 조정은 몽골 사신을 감옥에 가두고 전쟁 상태에 돌입했다. 베트남의 ..
2021.06.13 -
운남 대리국을 정복한 몽골
칭기즈칸에게는 여러 아들들이 있었다. 몽골의 전통에 따르면 막내아들이 아버지의 지위를 물려받아야 했다. 그러나 칭기즈칸은 용맹한 장수였던 막내아들 툴루이 대신 현명한 셋째아들 오고타이를 후계자로 선택했다. 칭기즈칸 사후 몽골 족장들은 이를 무시하고 전통에 따라 툴루이를 새로운 칸으로 선출했다. 툴루이는 2년간 임시 칸으로 있다가 아버지의 결정을 지키기 위해 형 오고타이에게 제위를 양보했다. 오고타이에 이어 그의 장남 귀위크가 어머니의 도움으로 몽골 제국의 제3대 칸이 되었다. 그는 현명하고 결단력이 있는 인물이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정적인 바투를 굴복시키기 위해 원정길에 올랐다 즉위 2년 만에 병사해 어떤 업적을 남기기에는 치세가 너무 짧았다. 귀위크가 죽자 툴루이의 막내아들 몽케가 칸의 자리에 올랐다..
2021.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