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잉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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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 속에 세워진 막왕조
신변의 위협을 느낀 소종은 이번에는 군벌에게 의지해 위기를 돌파하려 했다. 그는 타잉화에 근거를 둔 찡(鄭)씨 일가에게 밀사를 보내 막당중을 타도하라고 지시하고, 자신은 탕롱 서쪽 썬떠이로 피신했다. 왕이 달아나고 전국에서 근왕군이 밀려오자 막당중은 소종의 동생 공황제(恭皇帝)를 즉위시킨 뒤 동쪽 자신의 세력지로 옮겨갔다. 소종의 도박이 성공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 힘의 한계를 오인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왕의 측근과 군 지휘관들 사이에 갈등이 커지자 소종은 환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찡씨 일가 수장인 찡뚜이가 보낸 장군을 처형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찡뚜이는 병사들을 데리고 와 소종 황제를 붙잡아 타잉화로 돌아갔다. 이런 분열과 하극상은 막다른 처지에 몰려있던 막당중에게 회생의 기회를 선..
2021.08.13 -
살아남은 자
레러이는 지금의 베트남 중북부 타잉화(탄호아)성 람선 지방에서 대지주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할아버지 때 큰 부를 이뤄 머슴만 천여 명에 이를 정도였다. 유복한 집안에서 활달하게 자란 레러이는 야심 많고 호방하며 벗들을 좋아하는 풍운아로 성장했다. 그의 성격으로 볼 때 만약 평화 시기였다면 평판 나쁜 젊은이들을 끌고 다니는 부잣집 아들로 그쳤을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절박한 시대의 요구가 그를 영웅의 길로 이끌었다. 쩐꾸이 황제가 침략자 명나라에 맞서 봉기하자 피 끓는 청년 레러이는 주저 없이 가담했고 이내 반란군 장군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수년간의 투쟁이 무위로 끝나고 반란이 진압 당하자 그는 조용히 고향 람선으로 돌아왔다. 반란군 수뇌부였음에도 레러이는 목숨을 보전했음은 ..
2021.07.17 -
그곳에 가면) 호왕조의 수도
호뀌리는 이곳에서 수많은 피를 뿌린 뒤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호뀌리는 임금인 순종(順宗)을 끌고 타잉화로 가 새 수도를 세우고 서도(西都)라고 이름 붙였다. 지금의 타잉화성 빈록현이다. 하노이시에서 남쪽으로 150km 그리고 타잉화시에서는 북서쪽으로 45km 떨어져 있다. 서도 주변은 옛 왕조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시골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보면 들판 한 가운데 웅장한 성의 유적이 나타난다. 돌로 만든 동서남북 네 개의 성문과 성벽이 거의 완벽한 형태로 남아 있다. 성채는 남북으로 870m 동서로 883m의 거의 정사각형 모형이며, 정문이라 할 수 있는 남문이 높이 9.5m 폭 15m로 보는 이를 압도하는 웅장한 크기이다. 동남아시아에 현존하는 유일한 석조 성채이며, 독창적인 건축술로 ..
2021.07.15 -
쩐왕조의 비극적 종말
참파와의 전쟁은 끝났지만, 왕조를 지키려는 자와 바꾸려는 자들의 싸움은 이제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레뀌리는 태상황 예종(藝宗)을 부추겨 정적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거나 암살하거나 자결을 강요하는 등 갖은 방법으로 제거해갔다. 판단력을 잃고 휘둘리던 예종이 그나마 사망하자 레뀌리는 더이상 거리낄 게 없었다. 레뀌리는 임금인 순종(順宗)을 겁박해 1397년 수도를 탕롱에서 자신의 세력 근거지인 타잉화로 옮겼다. 그리고 천도 다음해 순종에게 이제 겨우 세 살인 태자를 왕위에 올리고 태상황으로 물러나도록 강요했다. 순종은 모든 요구에 순순히 따르며 목숨만이라도 부지하려 했지만, 이제 새 왕조를 꿈꾸는 레뀌리는 권력에 위협이 될 작은 가능성마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퇴위한 뒤 도교사원에 들어가 있던 순종은 레..
2021.07.11 -
망국을 부른 비겁자들
태상황 예종은 전사한 왕의 둘째 아들 쩐히엔을 새 왕으로 즉위시켰다. 쩐히엔 역시 유약한 인물이어서 나라의 권력이 점점 신하들에게 넘어갔다. 쩐히엔은 비자야 전투에서 도망쳐 백의종군하고 있던 도뜨빈을 다시 중용해 군대의 모든 지휘권을 맡겼다. 그리고 참파의 침략에 대비한다며 조상들의 무덤을 파 부장품을 비밀 장소로 옮겼다. 이런 용렬한 지도부가 외적의 침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포 비나수르가 1377년과 1378년 연거푸 탕롱을 공격했을 때 베트남군은 달아나기에 바빴다. 베트남의 수도가 10년도 안 되는 기간에 세 번이나 참파군에 점령되는 치욕을 당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포 비나수르가 베트남 공격의 목적을 약탈에서 정복으로 바꾸었다는 사실이다. 잇따른 원정의 승리로 참파의 영토는 계속 북쪽으로 넓어졌..
2021.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