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쯔강(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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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청교체 11) 끝까지 분열했던 남명정권
명나라가 멸망하자 많은 황족과 관료들이 강남으로 피신했다. 명나라는 양쯔강 이남의 세력으로도 충분히 국가를 재건해 유지할 수 있었다. 과거 금나라에 쫓겨간 송나라도 그러했다. 특히 남경은 명 태조 주원장이 나라를 세운 곳으로 영락제 때 북경으로 수도를 옮긴 뒤에도 특별 관리하던 도시였다. 그곳의 방어시설과 전략물자가 충분했다. 숭정제의 자결 소식이 알려지자 남경에서는 다음 황제로 누구를 옹립하느냐는 논쟁이 시작됐다. 유력한 후보자는 2명이었다. 만력제의 손자인 주유승과 조카인 주상방이었다. 주유승은 탐욕스럽고 음탕하며 불효하는 등 거의 망나니였다. 반면에 주상방은 유능하고 평판이 좋았지만 혈통에서는 조금 밀렸다. 격렬한 당쟁을 벌인 끝에 군사력을 보유한 마사영의 지지를 받고 주유승이 1644년 6월 보위..
2021.08.29 -
몽골의 3차 송나라 침략 (2) 경제대국의 멸망
양양 방어선이 무너지며 이제 송나라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에 불과했다. 쿠빌라이는 양양성을 점령한 다음해 최측근인 바얀에게 20만 대군을 주어 송의 수도를 향해 진격하도록 했다. (1274년 9월) 출정 전에 쿠빌라이는 바얀을 불러 “짐의 백성들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제 송의 땅을 점령의 대상이 아닌 통치의 영역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바얀은 쿠빌라이의 뜻에 따라 연도의 백성들에게 식량과 약까지 나누어주었고, 점령지 백성들은 약탈자에서 갑자기 보호자로 바뀐 바얀의 군대를 ‘왕자의 군대’라고 부르며 환영했다. 가사도는 송나라에 남아 있던 사실상 모든 병력인 13만 명을 긁어모아 장강 하류인 무호로 출진했다. 가사도는 어떻게든 이 병력으로 몽골군을 저지할 방도를 찾는 대신, 바얀에게 사신..
2021.06.17 -
몽골의 2차 송나라 침략 (2) 왕위 쟁탈전
몽케 대칸이 죽고 몽골군의 철수가 시작되자 송나라 동부전선에서 싸우던 쿠빌라이는 마음이 빠짝 타들어갔다. 자신이 중국에 그리고 동생 훌라구는 서아시아에 묶여 있는 사이 수도 카라코룸에서 쿠릴타이가 열리면 그곳을 통치하던 막내 아릭부케가 대칸으로 선출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당장 철수했다가는 운남성에서 올라오던 우량하타이가 고립될 위험이 컸다. 운남 주둔군은 얼마 전까지 자신이 지휘하던 부대였고 앞으로 벌어질 내전에서 큰 힘이 되어줄 병력이었다. 쿠빌라이는 운남 주둔군을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쿠빌라이는 송나라의 예상을 깨고 양쯔강을 건너 악주를 포위했고, 깜짝 놀란 송의 조정은 가사도(賈似道)에게 군사를 주어 이를 구원하도록 했다. 송의 원병 규모가 부담스러웠고 우량하타이도 어느 정도 북상해왔..
2021.06.16 -
몽골의 2차 송나라 침략 (1) 조어성의 기적
몽케 대칸은 1258년 송나라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명령했다. 그는 군대를 셋으로 나누어 서쪽 사천성 공략은 자신이 직접 지휘하고, 과거 최대 격전지이었던 호북성 무창 방면은 둘째 동생인 쿠빌라이, 운남에서 올라오는 별동대는 현지 주둔군 사령관인 우량하타이가 지휘하도록 했다. 몽골의 대군이 남하하자 사천성의 대다수 성들은 겁에 질려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했다. 그러나 쾌속 진격하던 몽골군은 이번에는 오늘날의 중경 북쪽에 있는 조어성(釣魚城)에서 제동이 걸렸다. 조어성은 양쯔강의 세 지류가 만나는 지점의 험준한 절벽 위에 쌓은 산성이었다. 몽골군은 성의 삼면을 포위한 뒤 동서 양쪽에서 공격을 시작했다. 조어성의 군민 10만 명이 왕견(王堅)의 지휘 아래 똘똘 뭉쳐 몽골의 공격에 대항했다. 왕견은 몽골의 1..
2021.06.15 -
북쪽에서 밀려오는 위기
중국 황하 중·하류에 터를 잡고 고대문명을 일으킨 한(漢)족은 상나라 주나라를 거치며 황하 상류로 다시 사방 각지로 세력을 뻗어 나갔다. 정치와 경제 기술 등 다방면에서 앞서 있던 한족의 문화는 자석처럼 주변 민족들을 끌어당겨 속속 중화의 질서 안에 편입시켰다. 이민족들은 오랜 세월이 흐르며 스스로를 한족이라 여기게 되었고, 중원의 패권 경쟁에 뛰어들기까지 했다. 중국 남부의 광대한 국가였던 초나라는 당초 오랑캐로 분류됐지만 전국시대 한때 최강자로 군림했고, 서쪽의 진나라도 오랑캐라고 멸시당하다 최후의 승리를 거둬 중국을 통일했다. 지금은 중국의 한복판을 관통해 흐르는 장강(長江) 즉 양쯔강이 고대 중국인들에게는 머나먼 남쪽 변방이었다. 그 아래 첸탕강 유역 지금의 저장성 지역에 신석기시대부터 황하와는 ..
2021.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