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꾸옥뚜언(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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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의 영웅이 살아남는 법
쩐꾸옥뚜언은 인종과 그 뒤를 이은 영종을 보필하다 말년에 자신의 농장이 있는 반끼엡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냈다. 수십 년간 전군을 지휘했고 외적을 세 차례나 막아내 만백성의 존경을 받는 그였지만 왕에 대한 충성과 겸양을 잃지 않았다. 왕이 그에게 어떠한 호칭이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윤허했지만, 왕이 직접 정해준 ‘흥다오브엉(興道王)’ 외에 다른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쩐꾸옥뚜언은 뜰에서 산책을 하다 차남에게 “진정한 권력자라면 나라를 얻어 후세에게 물려줘야 한다는데 그런 야심이 있느냐”고 물었다. 차남이 무릎을 꿇고 “송나라 태조도 미천한 농민이었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스스로 나라를 세웠습니다”라고 답하자, 갑자기 칼을 빼어들고 “내 아들이 역적이었다”며 내리치려 했다. 가족들..
2021.07.04 -
몽골의 3차 베트남 침략 (6) 대역사의 완성
이제는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 우기는 바짝바짝 다가오고, 곳곳에서 베트남군의 습격으로 전사자들이 늘어났다. 몽골군 장군들은 토곤에게 이대로 베트남에 머물다가는 참사를 겪을 것이라고 계속 진언했다. 토곤은 눈앞의 암담한 현실과 이대로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맞닥뜨릴 가혹한 책임추궁 사이에서 갈등했다. 1288년 여름, 토곤은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그는 “베트남은 너무 덥고 습하며 군대는 지쳤다”면서 철군을 선언했다. 몽골군은 두 갈래로 나뉘어 육로로는 랑썬을 향해 그리고 해로로는 바익당 강을 통해 퇴각하기로 했다. 육로로 철수하는 부대는 토곤이, 해로 쪽은 오마르가 지휘했다. 베트남은 몽골군을 순순히 돌려보내지 않았다. 쩐꾸옥뚜언은 병력을 둘로 나누어 사위인 팜응우라오 장군에게 북쪽 국경 쪽에 매복해 몽골..
2021.06.30 -
몽골의 2차 베트남 침략 (4) 물러가는 적들
수세에 몰린 몽골군은 몇몇 성들에 틀어박혀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보급선이 끊어진데다 베트남의 청야전술로 어디서도 쌀 한 톨 구할 수 없었던 몽골 병사들은 굶주림에 시달렸다. 우기가 계속되면서 진중에 전염병도 퍼졌다. 토곤이 1차 침략의 실패 원인을 분석해 원정군에 중국 의사들을 대거 동행시켰지만 근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토곤은 결국 철군을 결심했다. 몽골군은 중국 광서성과 운남성의 본래 주둔지를 향해 북동쪽과 북서쪽 두 갈래로 나뉘어 빠르게 퇴각했다. 토곤 자신은 킵차크 출신 시도르가 이끄는 수군의 배를 타고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육로로 이동한 대부분의 부대는 베트남군의 격렬한 반격에 시달렸다. 쩐꾸옥뚜언은 홍강 북쪽에 5만 명의 병력을 보내 몽골군의 앞을 가로막았다. 반끼엡, 노이방..
2021.06.22 -
죽더라도 싸우겠다
몽골은 참파 침략 도중에 여러 차례 베트남에 사신을 보내 길을 빌려주고 군량을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베트남은 참파가 멸망하면 자신들 역시 버티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식량은 조공 형식으로 제공하겠지만 남진로는 열어줄 수 없다며 거절했다. 1284년 말 중국 각지에서 무려 20만 명의 대병력이 베트남 접경 광서성으로 이동했다. 쿠빌라이의 아들 토곤이 이끌 이 군대에는 몽골족 정예병과 옛 금나라 땅에서 모은 북방민족 병사들, 옛 송나라 땅에서 징집한 조금은 덜 미더운 한족 병사들이 망라돼 있었다. 토곤은 다시 베트남에 참파로 가는 길을 열고 군량을 제공하라고 요구했지만 베트남의 대답은 똑같았다. 전쟁은 임박했고 전력의 열세는 불을 보듯 명확했다. 흉포한 적의 침략을 앞두고 민심이 흔들리자..
2021.06.19 -
몽골의 1차 베트남 침략 (1) 무너진 방어선
우량하타이가 이끄는 몽골군은 베트남 국경을 넘어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왔다. 몽골군은 홍강과 로강을 따라 두 길로 나뉘어 남하했는데, 수도인 탕롱 서북쪽 약 50km 지점까지 접근하는 동안 전투다운 전투조차 없었다. 몽골군과 베트남 주력군은 홍강과 로강, 다강이 하나로 합쳐지는 비엣찌에서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쳤다. 베트남이 이곳을 본격적인 방어선으로 설정한 것이다. 몽골군은 주저 없이 강을 건너 베트남군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이때 전투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찾기 어렵지만 세계 다른 지역에서 몽골군이 사용했던 전술에서 유추한다면, 주력부대가 베트남군과 대치한 것처럼 기만술을 쓰면서 수비가 허술한 지점을 골라 도강한 뒤 베트남군의 측면을 공격했을 가능성이 크다. 야전에서 몽골 기병대가 자유롭게 기동할..
2021.06.14 -
베트남에 몰려오는 전쟁의 먹구름
베트남은 호라즘처럼 몽골 상인들을 학살하거나 버마처럼 멋모르고 몽골을 선제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몽골과의 충돌을 피하려 필사적인 외교 노력을 펼쳤다. 그러나 베트남이 애를 쓴다고 피할 수 있는 전쟁이 아니었다. 몽골의 몽케 대칸은 송나라에 대한 두 번째 침략을 시작하기 한 해 전인 1257년 운남 주둔군 사령관 우량하타이에게 베트남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베트남을 점령해 남쪽에서 송을 치는 또 하나의 공격로를 확보하고 베트남 군민을 대송전쟁에 동원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우량하타이는 국경에 3만 대군을 집결시켜 놓고 베트남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칠 것과 송을 공격할 길을 빌려줄 것을 요구했다. 이것을 사실상의 항복 요구로 받아들인 베트남 조정은 몽골 사신을 감옥에 가두고 전쟁 상태에 돌입했다. 베트남의 ..
2021.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