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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똣동 쭉동 전투 4) 고립된 명나라군
타잉화에 머물러 있던 레러이는 승전보 속에 탕롱 인근으로 본진을 옮겼다. 레러이가 탕롱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자 성 밖에 주둔하고 있던 방정 장군의 마지막 부대마저 수비를 포기하고 성 안으로 들어가 탕롱성은 외부와 고립되게 되었다. 레러이는 탕롱을 포위하는 한편 인근의 박닌 푸토 남딘 등 크고 작은 성들을 모조리 공격해 점령했다. 베트남의 정치 · 경제 중심지인 홍강 유역 통제권까지 이제 레러이가 장악하게 되었다. 패색이 짙어진 왕통은 레러이에게 협상 의사를 밝혔다. 레러이가 쩐왕조를 복위시키면 철군하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당초 명의 베트남 침략 명분이 호뀌리의 왕위 찬탈을 징벌한다는 것이었으니, 쩐왕조를 다시 세우면 명나라군이 물러가도 크게 체면을 깎이지 않을 법도 했다. 레러이는 “전쟁의 고통으로부터 ..
2021.07.29 -
대명 4차 봉기 3) 탕롱으로 가자
베트남 중부와 남부를 석권한 레러이는 그 뒤 일 년 동안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그 사이 명나라 베이징에서는 홍희제가 즉위 1년도 안 돼 죽고 아들 선덕제가 즉위했다. 선덕제는 베트남의 저항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그곳 백성들에게 유화정책을 펴도록 지시했지만 이미 때가 너무 늦었다. 레러이는 1426년 9월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고 마지막 목표인 탕롱(지금의 하노이)을 향해 출정했다. 그는 만여 명의 병사들을 셋으로 나누어 진격했다. 팜반싸오와 찐카, 유명한 산적 출신인 도비 그리고 검술의 달인 리찌엔 장군이 이끄는 3천 명은 선봉대가 되어 서북 내륙을 거쳐 탕롱을 향해 갔다. 공포의 루년추와 현명한 부이부, 레쯔엉, 레보이 장군 등이 이끄는 우군(右軍) 4천 명은 홍강 하류를 장악해 응에안과 하띤에서 철..
2021.07.25 -
그곳에 가면) 대몽항전 최후 격전지
바익당 강(白藤江)은 베트남 하이퐁과 하롱 사이를 가르며 흐른다. 짧은 강이지만 아열대 평야 위에서 여러 지류들과 합하고 나뉘기를 반복하며 풍부한 수량을 품어 온다. 백등강(白藤江)이라느 이름은 물 색깔이 희고 (白), 지류들이 등나무 넝쿨처럼 얽혀있다는 (藤) 뜻에서 연유했다. 하류의 폭은 1km 정도나 되는데, 서쪽의 깜 강과 합류한데다 강 하구가 갑자기 넓어져 특히 밀물과 썰물 때는 강물의 흐름이 거세다. 바익당 강 위에는 하노이에서 하롱베이로 가는 다리들이 놓여 있다. 그러나 다리까지 길을 돌아가기 싫은 사람들이 아직도 아주머니 사공이 젓는 나룻배를 이용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넓은 바익당 강 위로 화물선들이 활기차게 오고 다닌다. 그러나 급류뿐 아니라 곳곳에 암초들이 숨어있어 등대로 위험..
2021.07.01 -
소득 없는 송나라의 2차 침략
남부의 세 개 도시가 유린당한 사실에 송나라 조야는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 송 신종은 즉시 곽달(郭達)을 토벌군 지휘관으로 임명해 베트남을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송나라는 먼저 참파 및 크메르와 동맹을 맺어 베트남을 남쪽과 서쪽에서 동시에 공격하도록 했다. 다만 사서에는 두 나라가 베트남 공격에 적극 참여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비록 두 나라가 베트남과 적대적이기는 했지만 중국이 베트남을 정복한 뒤에도 자신들과 계속 우호관계를 이어갈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그보다는 두 강국이 싸워 서로 쇠약해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1076년 송나라 대군이 베트남 국경을 넘었다. 탕롱을 향해 진격하던 송나라군은 느응우옛강 즉 지금의 꺼우강 전투에서 패배했지만, 병력의 수를 앞세워 그대로 밀고 내려가 ..
2021.06.02 -
조심스러웠던 리(李) 왕조
전레(前黎) 왕조는 롱딩의 학정 때문에 30년 만에 무너졌다. 롱딩이 죽자 신하들은 리꽁원(李公蘊)을 새 황제로 추대했다. 베트남 최초의 장기 왕조인 리(李) 왕조가 시작된 것이다. 리꽁원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세 살 때 어머니는 그를 절에 데려가 승려의 양자로 입적시켰고, 이후 불제자로서 교육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리꽁원은 장성한 뒤 수도인 호아루로 가 궁궐수비대에 들어갔는데 오늘날의 군종장교 역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온화하고 성실한 성품의 그는 승진을 거듭하더니 마침내 레호안 황제의 눈에 들어 부마가 되고 궁궐 수비를 책임지는 지위에까지 올랐다. 리꽁원이 황제로 선택된 것은 그가 누구도 적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정과 군대의 실력자들이 그가 황제가 돼도..
2021.05.30 -
그곳에 가면) 육지의 하롱베이 닌빈
하노이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2시간 가량 가면 닌빈(Ninh Bình) 성이다. 닌빈은 두 왕조의 도읍이 있던 주요 사적지이자 자연경관이 뛰어나기로도 유명하다. 닌빈 성 성도인 닌빈 시는 진입로 모습부터 범상치 않다. 도시 경계에 세워진 커다란 문은 장엄할 뿐 아니라 지역의 역사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 옛날 이곳은 천혜의 요새로 여겨졌다. 석회암이 침식돼 만들어진 절벽 같은 산들이 겹겹이 병풍을 이루고 그 사이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길들은 만부부당(萬夫不當), 능히 한 명이 만 명의 적을 막을 형세이다. 닌빈은 들판과 강 호수 깎아지른 산들이 어우러지며 곳곳에 절경을 이뤄 ‘육지의 하롱베이’라고 불린다. 이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인도차이나’ 등 여러 영화와 TV 프로그램들을 촬영하기도 했..
2021.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