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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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익당강에서 끊은 천년의 사슬
베트남이 중국의 혼란기를 맞아 응오꾸엔 같은 천재적인 전략가의 지휘를 받게 된 것은 독립을 위한 하늘의 도움이었다. 그는 키가 크고 건장하여 어릴 적부터 장수로 촉망받았고 지력과 담력까지 겸비한 인물이었다. 응오꾸엔의 아버지 역시 유력한 지방 호족으로 독립운동의 열렬한 후원자였다. 응오꾸엔은 33살에 즈엉딩응에 장군의 휘하에 들어가 남한군을 몰아내는 데 큰 공을 세웠고, 즈엉딩응에는 그의 능력을 높이 사 자신의 사위로 삼았다. 즈엉딩응에는 응오꾸엔을 계속 승진시켜 아이주의 통치를 맡겼는데, 그곳은 즈엉딩응에의 고향이자 군사력의 기반이었다. 양아버지 즈엉딩응에를 암살한 끼에우꽁띠엔은 처남 응오꾸엔이 봉기하자 위협을 느끼고 남한에 스스로 신하가 될 것을 청하는 매국적인 행동을 했다. 끼에우꽁띠엔이 구원을 요..
2021.05.19 -
그곳에 가면) 쯩 자매 순국지
쯩짝과 쯩니 자매를 기리는 사당은 베트남에 세 곳이 있다. 그중 선떠이성 핫몬의 사당이 가장 크고 오래됐다. 핫몬 사당으로 가기 위해 하노이에서 북쪽으로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농로로 벗어나 또 한참을 이동했다. 초행인 운전기사가 자신감을 잃을 무렵 ‘하이바쯩(Hai Bà Trưng) 사당’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였다. ‘하이’는 둘, ‘바’는 아주머니라는 뜻이다. 이제 다 왔나 싶었지만, 길은 동네로 이어져 마주 오는 차가 있을지 걱정되는 좁은 골목으로 꽤 들어갔다. 그러다 갑자기 아름다운 사당이 나타났다. 하이바쯩 사당은 넓고 잘 정리돼 있었다. 새로 지어진 대리석 시설들이 베트남 정부가 사당 관리에 노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사당의 본관은 고색창연함을 잃지 않았다. 핫몬 사당은 10세기에 처음..
2021.05.16 -
압도적 전력 한나라군
쯩짝의 열정과 그녀를 따르는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지만, 베트남이 독립을 쟁취하기에는 국제정세가 너무 나빴다. 쯩짝이 거병했을 때 중국은 이제 막 내전을 수습하고 새 왕조가 들어서 국력이 극성기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쯩짝이 상대해야 할 후한(後漢)의 시조 광무제(光武帝)는 정치와 군사 모든 면에서 걸출한 인물이었다. 기원 전후에 한나라가 외척과 환관의 발호로 혼란스러워지자 재상 왕망이 천자에게 양위를 강요해 신(新)나라를 세웠고, 왕망의 비현실적인 이상정치에 반발해 중국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 가운데 한나라 왕족인 유수(劉秀)가 곤양 전투에서 포위된 성을 홀로 빠져 나와 소수의 원군을 모은 뒤 적의 중심부를 타격하는 대담한 작전으로 왕망의 40만 대군을 와해시켰다. 유수는..
2021.05.13 -
어우락으로 새로운 출발
중국 남부에서 이동한 백월족의 한 무리가 베트남 북쪽 고지대에 정착해 어우비엣(Âu Việt, 甌越)을 세웠다. 어우비엣은 세력이 커지면서 반랑과 자주 싸움을 벌였다. 반랑의 18대 흥왕이 향락에 빠져 국사를 소홀히 하자 어우비엣의 툭판이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갔다. 나라를 빼앗긴 흥왕은 우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기원전 258년의 일이었다. 툭판은 현명한 지도자였다. 그는 반랑을 점령한 뒤 자신을 안즈엉왕(安陽王)이라 칭하고 국호를 어우락(Âu Lạc, 甌駱)으로 정했다. 어우락은 ‘어우’비엣과 반랑 백성들을 일컫는 ‘락’비엣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정복한 나라와 정복당한 나라가 차별 없이 하나로 융합되기를 바라는 뜻을 담았다. 안즈엉왕은 또 반랑 수도를 방문해 ‘맹세의 돌’에 참배하고, 옛 흥왕들..
2021.05.09 -
최초의 국가 반랑
“주나라 장왕 때 베트남에 마술로 각 부락을 제압한 기인이 있었는데, 그가 스스로 흥왕(Hùng Vương, 雄王)이라 칭하고 나라 이름을 반랑으로 지었다.” 14세기에 쓴 베트남의 역사서 「월사략」에 나오는 내용이다. 중국 주나라 장왕 때라면 B.C. 7세기로 지금부터 2,700년 전이다. 학자들은 실제로 이때쯤 반랑이 세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신기하게도 고조선의 건국 시기와 비슷하다. 흥왕이 마술로 각 부락을 제압했다는 「월사략」의 기록은 단군왕검의 ‘단군’이 제사장을 의미하는 것과 맥이 통해 흥미롭다. 자연의 힘에 압도되고 항상 죽음의 공포 속에 살아야 했던 고대인들은 초월적인 힘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 능숙한 솜씨로 신비한 현상을 만들어 보이며 그 ..
2021.05.08 -
그곳에 가면) 하노이 역사박물관
베트남의 오랜 역사를 돌아보려면 국립역사박물관으로 가야 한다. 이 박물관은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와 홍강 사이 구시가지에 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인 1932년에 지어 아직까지 쓰고 있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프랑스와 동아시아 전통 양식을 조화시킨 이른바 인도차이나식 건축인데, 어느 부분을 어디서 따왔는지 가려보는 것도 흥미롭다. 사실 박물관은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 없이 방문하면 금방 싫증이 나기 쉬운 곳이다. 부서진 그릇, 많이 상한 목재, 빛바랜 그림, 누군지 모르는 조각상들뿐이지 않은가. 그러나 오래전 태어나 각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선인들의 희노애락을 유물을 통해 그려볼 수 있다면 여행의 큰 보람일 것이다. 역사박물관 안으로 들어가 호치민 흉상을 지나면 원시생활 상상도와 돌도구를 만드는 인형들이 ..
2021.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