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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남북조 시대
찡끼엠 사후 아들들의 권력투쟁을 틈타 막왕조가 침략해 왔을 때 응우옌황은 이를 격퇴하는 데 일조했다. 20년 뒤 찡뚱이 북진해 막왕조를 무너뜨린 뒤에는 탕롱으로 불려가 막왕조 잔당들을 소탕하는 데 동원됐다. 응우옌황은 묵묵히 소임을 다했지만 찡뚱은 자신의 휘하에 들어온 의심스러운 외삼촌을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8년의 세월을 보낸 응우옌황은 중부 해안인 닌빈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겠다며 탕롱을 떠나 그대로 배를 타고 후에로 돌아갔다. 탕롱을 벗어나기 전 응우옌황은 찡뚱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과 손자까지 인질로 남겨두어야 했다. 또한 응우옌황의 딸을 찡뚱의 아들 찡짱에게 출가시켜 몇 겹의 친족관계를 맺었다. 서로를 의심하고 경쟁했지만 응우옌황과 찡뚱 때까지는 그래도 친척이라는 의..
2021.08.18 -
찡 쭈어 무신정권
베트남의 새 지배자 찡뚱(鄭松)은 황제에게 깍듯이 대했다. 막왕조를 격멸한 다음 해 그는 세종(世宗)을 탕롱으로 모셔와 화려한 승전 의식을 거행했다. 당시 기록은 “제왕께서 탕롱의 정전에 들어가 제위에 오르자 모든 관리들이 축하 인사를 올렸다”라고 이 장면을 묘사했다. 찡뚱은 자신의 승리를 ‘반역자 막씨 일족을 몰아내고 후레왕조가 복원된 것’으로 선전한 것이다. 그러나 찡뚱은 후레왕조 황제에게 손톱만큼의 권력도 나눠주지 않았다. 황제는 그저 의례적인 지위에 불과했다. 찡뚱은 스스로 도원사총국정상부평안왕(都元師總國政尙父平安王)이라는 긴 직함을 붙인 뒤 왕부(王府)를 세워 관리들을 두고 나라를 다스렸다. 그리고 자신을 쭈어(主)라고 칭해 무신정권인 찡 쭈어(鄭主) 시대를 열었다. 무기력하게 굴복했던 세종(世..
2021.08.17 -
막왕조의 초라한 종말
타잉화에서는 응우옌낌이 차근차근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응우옌낌은 남쪽에 있는 응에안을 점령해 배후를 튼튼히 다진 뒤 북부 탕롱을 향해 진격했다. 타잉화의 경계를 넘어 썬남까지 육박해 들어갔지만, 위장 투항한 막당중의 부하 장군에게 응우옌낌이 독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응우옌낌의 사위 찡끼엠(鄭檢)은 급히 군사들을 수습해 타잉화로 퇴각했고 병권을 장악해 장인의 빈자리를 차지했다. 이로부터 약 60년 동안 북쪽에는 막씨왕조 남쪽에는 찡씨 세력이 자리를 잡고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두 세력은 서로 공격과 수비를 주고받았지만, 막왕조가 찡씨의 영역으로 쳐들어가는 경우가 좀 더 많았다. 이는 막왕조가 정치경제의 중심지인 홍강 유역에 자리 잡아 자원 확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세는 1562년 ..
2021.08.17 -
정보 수집에 미숙했던 황제의 치욕
명나라의 베트남 정벌 논쟁이 막 사그라들 무렵 갑자기 막당중이 사신을 보내 투항하고 토지와 호구를 기록해 명의 처분을 따르겠다고 밝혀왔다. 명으로서는 기대도 안 했던 막당중의 선물을 받은 셈이었다. 앞이 캄캄한 원정의 부담에서 벗어나면서도 실리도 챙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명나라 관리 모백온은 광서성으로 내려가 막당중에게 귀순하면 죄를 용서하겠다는 격문을 보냈다. 막당중은 관리들을 데리고 국경인 진남관(鎭南關)에 도착했다. 그리고 죄인처럼 머리를 풀고 목에 줄을 맨 뒤 맨발로 기어가 단상에 머리를 찧으며 항복의 표(表)를 올렸다. 막당중은 토지와 인구 대장을 바치고 국경 5개 지역을 할양하며 영원히 신복하겠다고 청하였다. 모백온은 막당중의 죄를 사면하고, 돌아가 황제의 명을 기다리도록 했다. 모백온의 상..
2021.08.15 -
명나라의 베트남 정벌 소동
막왕조에 맞서 후레왕조를 복원시키려는 반란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 가운데 응우옌낌(阮金)이 저항세력들을 규합해 베트남을 남북조 형세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막당중의 왕위 찬탈 때 라오스로 몸을 피했던 응우옌낌은 라오스 왕의 지원 아래 망명자들을 모아 후레왕조의 발원지인 타잉화로 돌아왔다. 그리고 비운의 황제 소종(昭宗)의 장남을 찾아내 새 황제로 추대함으로써 후레왕조 유신들의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래도 군사력의 열세를 느낀 응우옌낌은 명나라의 도움을 얻기 위해 사신을 보냈다. 막왕조 군사들의 눈을 피해 천신만고 끝에 3년 뒤 베이징에 도착한 사신단은 막당중의 왕위 찬탈을 알리고 토벌을 요청했다. 이미 명나라 조정은 베트남의 정변을 파악하고 내전에 개입할지 여부에 대해 대논쟁을 벌이던 중이었다. ..
2021.08.14 -
혼란 속에 세워진 막왕조
신변의 위협을 느낀 소종은 이번에는 군벌에게 의지해 위기를 돌파하려 했다. 그는 타잉화에 근거를 둔 찡(鄭)씨 일가에게 밀사를 보내 막당중을 타도하라고 지시하고, 자신은 탕롱 서쪽 썬떠이로 피신했다. 왕이 달아나고 전국에서 근왕군이 밀려오자 막당중은 소종의 동생 공황제(恭皇帝)를 즉위시킨 뒤 동쪽 자신의 세력지로 옮겨갔다. 소종의 도박이 성공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 힘의 한계를 오인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왕의 측근과 군 지휘관들 사이에 갈등이 커지자 소종은 환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찡씨 일가 수장인 찡뚜이가 보낸 장군을 처형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찡뚜이는 병사들을 데리고 와 소종 황제를 붙잡아 타잉화로 돌아갔다. 이런 분열과 하극상은 막다른 처지에 몰려있던 막당중에게 회생의 기회를 선..
2021.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