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73)
-
영웅들 독립을 꿈꾸다
중국 최남부인 청해주의 절도사 유엄이 후양 황제에게 왕으로 책봉해달라고 요구했다 거절당했다. 그러자 유엄은 스스로 제위에 올랐고 국호를 남한(南漢)이라 정했다. 남한은 지금의 중국 광동성과 광서성에 걸친 한반도 면적의 약 두 배쯤 되는 지역을 차지해 당시 중국을 할거했던 여러 국가들 중에는 비교적 약체였다. 그러나 베트남에는 위협적인 존재여서 쿡씨 정권은 중국 화북의 후양과 관계를 강화하며 남한의 세력 확장을 경계했다. 호시탐탐 베트남 침략을 노리던 남한의 유엄 황제는 후양 왕조가 후당으로 교체되며 중원이 혼란에 휩싸이자 이를 기회로 보고 군사행동을 개시했다. 남한군은 일거에 쿡씨 정권을 격파하고 그 수장을 압송했다. 남한의 베트남 점령은 일 년여에 그치고 말았다. 쿡씨 정권의 장군이었던 즈엉딩응에(楊廷..
2021.05.18 -
당나라 쇠퇴와 독립의 여명
베트남에게는 고통의 기간이었지만, 당나라는 중국 역사의 황금기라 불릴 정도로 번영을 구가했다. 당은 중앙아시아까지 넓힌 영토와 모든 민족문화를 받아들이는 개방성, 유럽까지 이어지는 무역을 통해 축적한 부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융성한 문학과 예술을 향유했다. 특히 6대 황제 현종은 정치세력 간 균형을 이루고, 민생안정을 꾀하며, 병역제도를 정비해 대외 원정에 성공하는 등 ‘개원의 치’라 부르는 중흥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현종이 말년에 양귀비에 빠져 정사를 팽개치면서 안녹산의 난이라는 대란을 초래했다. 이후 당나라에서는 지방 절도사 세력이 황실을 옥죄고 궁정에서는 환관들이 발호해 황제를 세우거나 가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 문란한 정치는 토지 겸병을 불러와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분노를 모..
2021.05.18 -
계속되는 저항과 좌절
쯩짝의 반란 이후에도 베트남인들은 독자적으로 때로는 토착화한 중국 이주민들과 함께 저항을 이어갔다. 중국에서 후한이 망하고 삼국이 병립하는 시기에 베트남 땅은 오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그때 또 한 명의 여성 반란 지도자인 찌에우어우가 나타났다. 찌에우어우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오빠 찌에우꾸옥닷과 함께 살았다. 그녀가 20살 되던 해 오빠가 결혼했는데 올케의 구박이 심하자 살해하고 산속으로 도망쳤다. 힘세고 똑똑했던 찌에우어우는 갖가지 이유로 도망쳐온 장정 천여 명을 휘하에 거느리게 되었다. 그 사이 마을에서는 중국인 관리의 폭정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오빠 찌에우꾸옥닷의 인도로 반란을 일으켰고, 찌에우어우는 산에서 내려와 이에 합류했다. 그녀의 용맹을 보고 주민들은 그녀를 지도자로 세웠다. 찌에우어우는 “..
2021.05.17 -
그곳에 가면) 쯩 자매 순국지
쯩짝과 쯩니 자매를 기리는 사당은 베트남에 세 곳이 있다. 그중 선떠이성 핫몬의 사당이 가장 크고 오래됐다. 핫몬 사당으로 가기 위해 하노이에서 북쪽으로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농로로 벗어나 또 한참을 이동했다. 초행인 운전기사가 자신감을 잃을 무렵 ‘하이바쯩(Hai Bà Trưng) 사당’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였다. ‘하이’는 둘, ‘바’는 아주머니라는 뜻이다. 이제 다 왔나 싶었지만, 길은 동네로 이어져 마주 오는 차가 있을지 걱정되는 좁은 골목으로 꽤 들어갔다. 그러다 갑자기 아름다운 사당이 나타났다. 하이바쯩 사당은 넓고 잘 정리돼 있었다. 새로 지어진 대리석 시설들이 베트남 정부가 사당 관리에 노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사당의 본관은 고색창연함을 잃지 않았다. 핫몬 사당은 10세기에 처음..
2021.05.16 -
이례적인 짧은 기록
쯩짝의 반란은 전력과 조직, 지도력 등이 매우 열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기간에 전국을 평정할 수 있었던 것은 소수의 중국인 관리들만 파견하고 하위 행정단위는 자치에 맡기는 느슨한 지배형태에도 원인이 있었다. 이에 따라 마원은 반란을 완전히 진압한 뒤 베트남의 전통체제를 뿌리째 파괴하고 여기에 한나라의 제도와 문화를 이식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먼저 락장과 락후를 폐지하고 군현제도를 강화했다. 현의 수장에는 중국인들을 앉히고 일부 지역에만 소수의 친한(親漢) 베트남인들을 임명했다. 중국인 관리들이 상주하는 곳에는 성채를 쌓고 병력을 주둔시켰다. 이를 위해 둔전을 만들어 휘하에 있던 병사들을 정착시켰다. 그리고 락장 가족 수백 세대를 중국 남부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로써 베트남의 토착지배계급은 세력을..
2021.05.15 -
독립의 꿈은 홍강에 떨어지고
쯩짝과 그녀의 참모들은 교착 상태를 타개할 방법을 숙고했다. 그러나 이미 견고하게 다져진 한나라군의 방어망을 뚫어낼 묘안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아까운 시간만 자꾸 흘러갔다. 사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쯩짝의 군대가 개전 초 국경에서부터 한나라군의 배후를 공격해 보급로를 끊고, 예상하지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기습하고, 그래도 패하면 물러나며 주변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우기가 되면 분산된 적을 공격해 이동을 강요하고, 낯선 지형에 고립시켜 섬멸하는 전술을 사용했으면 이길 수도 있었다. 다만 이런 베트남의 유격전과 전격전 청야전술은 그 후 오랜 세월 수많은 피를 대지에 뿌리며 체득한 것이지, 그 이전의 인물이자 실전 경험조차 없는 쯩짝에게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쯩짝의 군대와 마원의 ..
2021.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