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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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비엣을 세우다
임효는 선정을 베풀어 백월족의 민심을 다스렸고 농업과 교통을 발전시켰다. 조타도 중국 본토가 평화로웠다면 새 정복지의 한 부분을 다스리며 관료로서의 출세를 꿈꾸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절대 권력자인 진시황이 죽고 못난 아들 호해(胡亥)가 황제의 자리를 가로챈 뒤 세상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진승과 오광이 농민들을 선동해 반란을 일으키자 삽시간에 수십만의 무리가 그 아래 모여들었다. 비록 진승과 오광은 몇 달 만에 진나라군에 진압됐지만, 천하 각지에서 반란군이 들고 일어났다. 이 무렵 남쪽에서도 생존을 위한 이합집산이 벌어졌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임효가 병이 들자 조타를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것이다. “나는 군대를 일으켜 중원과 이어진 길을 끊고 스스로 방비하여 제후들이 일으킨 변고에 대비..
2021.05.10 -
진시황의 끝없는 욕망
그의 욕망은 거의 병에 가까웠다. 오백 년을 나뉘어 싸워온 중국의 일곱 나라를 통일하고도 진시황은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아는 세상의 끝까지 손에 쥐려 하였다. 전쟁은 멈추지 않았고, 침략당한 나라뿐 아니라 중국의 백성들도 대규모 원정을 수행하느라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사마천의 「사기」는 당시의 참상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법은 엄하고 정치는 가혹했으며 아첨하는 자가 많아 매일 그들의 칭송만 듣다 보니 뜻이 커지고 마음은 교만해졌다. 그 결과 위세를 나라 밖까지 떨쳐보고 싶은 마음에 몽염을 시켜 장병들을 이끌고 북쪽의 흉노를 치게 했다. 영토를 개척하여 국경을 넓히고 북하에 군대를 주둔시키며 말먹이와 군량을 실은 수레를 뒤따르게 했다. 다시 위나라 사람 도수를 시켜 수군을 ..
2021.05.10 -
그곳에 가면) 반랑의 수도 퐁쩌우
반랑 왕국이 도읍으로 정한 퐁쩌우는 오늘날의 푸토성 비엣찌시로 추정된다. 이곳의 응이아린산에 세워진 사당에서는 매년 음력 3월 10일 열여덟 명 흥왕에 대한 제사가 봉행된다. 베트남 정부도 이날을 국경일로 정하고 국가 주석 등 고위인사들과 전국 54개 민족대표들이 함께 행사에 참여한다. 응이아린은 높이 175m의 나지막한 산이다. 산 입구에 들어서면 이곳에 흥왕 사당이 있음을 알리는 콘크리트 문이 서 있다. 붉은 칠을 한 문에는 ‘高山景行(높은 산과 큰 길)’ 즉 세상에서 널리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중국 시경에 나오는 말이다. 이곳에서 사당까지는 굽이굽이 계단이 이어진다. 산길을 한참 오르면 고풍스러운 사당 정문이 방문객을 맞는다. 흥왕 사당은 베트남이 명나라의 침략을 물리치고 역사..
2021.05.09 -
어우락으로 새로운 출발
중국 남부에서 이동한 백월족의 한 무리가 베트남 북쪽 고지대에 정착해 어우비엣(Âu Việt, 甌越)을 세웠다. 어우비엣은 세력이 커지면서 반랑과 자주 싸움을 벌였다. 반랑의 18대 흥왕이 향락에 빠져 국사를 소홀히 하자 어우비엣의 툭판이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갔다. 나라를 빼앗긴 흥왕은 우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기원전 258년의 일이었다. 툭판은 현명한 지도자였다. 그는 반랑을 점령한 뒤 자신을 안즈엉왕(安陽王)이라 칭하고 국호를 어우락(Âu Lạc, 甌駱)으로 정했다. 어우락은 ‘어우’비엣과 반랑 백성들을 일컫는 ‘락’비엣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정복한 나라와 정복당한 나라가 차별 없이 하나로 융합되기를 바라는 뜻을 담았다. 안즈엉왕은 또 반랑 수도를 방문해 ‘맹세의 돌’에 참배하고, 옛 흥왕들..
2021.05.09 -
북쪽에서 밀려오는 위기
중국 황하 중·하류에 터를 잡고 고대문명을 일으킨 한(漢)족은 상나라 주나라를 거치며 황하 상류로 다시 사방 각지로 세력을 뻗어 나갔다. 정치와 경제 기술 등 다방면에서 앞서 있던 한족의 문화는 자석처럼 주변 민족들을 끌어당겨 속속 중화의 질서 안에 편입시켰다. 이민족들은 오랜 세월이 흐르며 스스로를 한족이라 여기게 되었고, 중원의 패권 경쟁에 뛰어들기까지 했다. 중국 남부의 광대한 국가였던 초나라는 당초 오랑캐로 분류됐지만 전국시대 한때 최강자로 군림했고, 서쪽의 진나라도 오랑캐라고 멸시당하다 최후의 승리를 거둬 중국을 통일했다. 지금은 중국의 한복판을 관통해 흐르는 장강(長江) 즉 양쯔강이 고대 중국인들에게는 머나먼 남쪽 변방이었다. 그 아래 첸탕강 유역 지금의 저장성 지역에 신석기시대부터 황하와는 ..
2021.05.08 -
최초의 국가 반랑
“주나라 장왕 때 베트남에 마술로 각 부락을 제압한 기인이 있었는데, 그가 스스로 흥왕(Hùng Vương, 雄王)이라 칭하고 나라 이름을 반랑으로 지었다.” 14세기에 쓴 베트남의 역사서 「월사략」에 나오는 내용이다. 중국 주나라 장왕 때라면 B.C. 7세기로 지금부터 2,700년 전이다. 학자들은 실제로 이때쯤 반랑이 세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신기하게도 고조선의 건국 시기와 비슷하다. 흥왕이 마술로 각 부락을 제압했다는 「월사략」의 기록은 단군왕검의 ‘단군’이 제사장을 의미하는 것과 맥이 통해 흥미롭다. 자연의 힘에 압도되고 항상 죽음의 공포 속에 살아야 했던 고대인들은 초월적인 힘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 능숙한 솜씨로 신비한 현상을 만들어 보이며 그 ..
2021.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