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파(11)
-
죽더라도 싸우겠다
몽골은 참파 침략 도중에 여러 차례 베트남에 사신을 보내 길을 빌려주고 군량을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베트남은 참파가 멸망하면 자신들 역시 버티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식량은 조공 형식으로 제공하겠지만 남진로는 열어줄 수 없다며 거절했다. 1284년 말 중국 각지에서 무려 20만 명의 대병력이 베트남 접경 광서성으로 이동했다. 쿠빌라이의 아들 토곤이 이끌 이 군대에는 몽골족 정예병과 옛 금나라 땅에서 모은 북방민족 병사들, 옛 송나라 땅에서 징집한 조금은 덜 미더운 한족 병사들이 망라돼 있었다. 토곤은 다시 베트남에 참파로 가는 길을 열고 군량을 제공하라고 요구했지만 베트남의 대답은 똑같았다. 전쟁은 임박했고 전력의 열세는 불을 보듯 명확했다. 흉포한 적의 침략을 앞두고 민심이 흔들리자..
2021.06.19 -
참파를 만만히 보았다가
몽골은 먼저 베트남 남쪽의 참파부터 공격했다. 몽골은 참파에 행중서성(行中書省) 즉 중앙정부기관인 중서성의 출장소를 설치했다. 이는 남해무역을 장악하고 장차 벌어질 전쟁에 필요한 식량과 병력을 차출하겠다는 의도였다. 베트남을 고립시키고 남북에서 동시에 공격하겠다는 군사적 목적도 있었다. 멀쩡한 남의 나라에 지방관청을 설치했으니 참파가 두 눈을 뜨고 이를 지켜볼 수는 없었다. 인적 물적 수탈은 물론 자칫 국권까지 그대로 넘어갈 판국이었다. 하릿지 태자 등 참파의 강경파들이 몽골 관리들을 체포해 감옥에 가두었다. 격분한 몽골은 즉시 원정군을 보냈다. 쿠빌라이는 송나라 정복에 공을 세우고 천주 성주로 봉해져 있던 소게투를 차출해 지휘를 맡겼다. 1282년 음력 12월, 350척의 배에 나눠 탄 만여 명의 몽골..
2021.06.18 -
베트남은 전쟁을 준비했다
베트남에게 중국은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경계의 대상이었다. 면밀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정세 변화에 맞춰 시시각각 대응책을 세워야만 국가의 존립을 보장할 수 있었다. 그런 베트남이 화북에서 벌어진 몽골과 금나라의 사활을 건 싸움을 모를 리 없었다. 아직은 수천 리 떨어진 전란이었지만 언제든 그 불똥이 남쪽으로 번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베트남 위정자들의 마음속에 깃들기 시작했다. 쩐왕조는 방위력 강화에 박차를 가했다. 쩐왕조는 먼저 국경지역 소수민족들을 껴안으려 노력했다. 족장에게 공주를 시집보내거나 족장의 딸을 왕실에 맞아들이는 혼인정책으로 유대를 강화했다. 또한 족장들에게 관직을 주고 자기 부락을 마치 식읍처럼 장악할 수 있도록 허용해 환심을 샀다. 그래도 므엉족 타이족 등 저항하는 부족들은 무력으로 진..
2021.06.11 -
재난으로 끝난 크메르의 베트남 침략
1128년 전투코끼리 등으로 중무장한 크메르군 2만 명이 쯔엉썬 산맥을 넘어 베트남 응에안 지방을 침략했다. 베트남은 20여 년간 별다른 대외전쟁 없이 평화를 누려왔지만 과거 송나라를 두 차례나 격파했던 군사력은 여전히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사방에 지평선이 펼쳐진 대평원에서 싸워온 크메르군은 강과 호수와 산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베트남 지형에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다. 결국 크메르군은 한 번의 대접전으로 패배해 축출되고 말았다. 본래 크메르군은 육군과 수군이 합동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는데 그 타이밍도 맞지 않았다. 700척의 대선단으로 구성된 크메르 수군이 몇 달 뒤에야 베트남 타잉화 해안에 도착했고, 육군이 패한 사실을 알고는 맥없이 물러서고 말았다. 수리야바르만 2세는 좀 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함을 ..
2021.06.05 -
정신병자 후계자와 레 왕조의 종말
북방의 위협을 제거하고 내정이 안정되자 레호안은 그동안 미뤄왔던 남쪽 참파 원정을 단행했다. 참파는 딘보린 황제가 죽은 뒤 레호안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응우옌박을 도와 수군으로 베트남 수도 호아루를 공격하려다 패배해 물러났었다. 그래도 레호안은 송나라의 침략이 임박해오자 참파와 우호관계를 맺기 위해 사신을 보냈는데 참파 왕이 사신을 옥에 가두었다. 이에 격분한 레호안은 송과의 전쟁이 끝난 다음 해 참파를 공격해 수도 인드라푸라를 점령하고 사원과 궁전을 파괴한 뒤 수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왔다. 베트남이 참파에 가한 최초의 공격이었는데, 충격을 받은 참파는 수도를 남쪽 비자야로 옮겼다. 이때부터 참파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해 베트남의 남진에 끝없이 밀리다 17세기 이후 국가로서의 형태마저 잃고 소수민족으..
2021.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