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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찡 쭈어 무신정권
베트남의 새 지배자 찡뚱(鄭松)은 황제에게 깍듯이 대했다. 막왕조를 격멸한 다음 해 그는 세종(世宗)을 탕롱으로 모셔와 화려한 승전 의식을 거행했다. 당시 기록은 “제왕께서 탕롱의 정전에 들어가 제위에 오르자 모든 관리들이 축하 인사를 올렸다”라고 이 장면을 묘사했다. 찡뚱은 자신의 승리를 ‘반역자 막씨 일족을 몰아내고 후레왕조가 복원된 것’으로 선전한 것이다. 그러나 찡뚱은 후레왕조 황제에게 손톱만큼의 권력도 나눠주지 않았다. 황제는 그저 의례적인 지위에 불과했다. 찡뚱은 스스로 도원사총국정상부평안왕(都元師總國政尙父平安王)이라는 긴 직함을 붙인 뒤 왕부(王府)를 세워 관리들을 두고 나라를 다스렸다. 그리고 자신을 쭈어(主)라고 칭해 무신정권인 찡 쭈어(鄭主) 시대를 열었다. 무기력하게 굴복했던 세종(世..
2021.08.17 -
정보 수집에 미숙했던 황제의 치욕
명나라의 베트남 정벌 논쟁이 막 사그라들 무렵 갑자기 막당중이 사신을 보내 투항하고 토지와 호구를 기록해 명의 처분을 따르겠다고 밝혀왔다. 명으로서는 기대도 안 했던 막당중의 선물을 받은 셈이었다. 앞이 캄캄한 원정의 부담에서 벗어나면서도 실리도 챙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명나라 관리 모백온은 광서성으로 내려가 막당중에게 귀순하면 죄를 용서하겠다는 격문을 보냈다. 막당중은 관리들을 데리고 국경인 진남관(鎭南關)에 도착했다. 그리고 죄인처럼 머리를 풀고 목에 줄을 맨 뒤 맨발로 기어가 단상에 머리를 찧으며 항복의 표(表)를 올렸다. 막당중은 토지와 인구 대장을 바치고 국경 5개 지역을 할양하며 영원히 신복하겠다고 청하였다. 모백온은 막당중의 죄를 사면하고, 돌아가 황제의 명을 기다리도록 했다. 모백온의 상..
2021.08.15 -
성종(聖宗), 베트남의 세종대왕
우리나라에 세종대왕이 있다면, 베트남 최고 성군은 단연 후레왕조의 성종(聖宗)이라 할 수 있다. 성종은 개국공신 장군들의 추대로 황제가 됐지만 성격과 이념이 그들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왕위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학문에 몰두했고 특히 유학에 깊은 조예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사변적인 학자에 머물지 않고, 황제가 신하들의 파벌싸움을 방치하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 똑똑히 지켜보면서 이를 극복할 정치적 식견을 쌓아왔다. 성종은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황제의 권한을 강화시켜 나갔다. 먼저 응이전이 설치했던 육부(六府)를 황제의 직속기관으로 만들어 대장군과 대신들의 권한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육과(六科)는 이·호·예·병·형·공 체제로 개편해 권한이 강해진 ..
2021.08.06 -
허약한 왕들과 권력투쟁
후레(後黎)왕조는 1433년 태조(太祖) 레러이가 사망하고 궁중 유혈사태와 반정으로 큰 혼란을 겪는다. 여기에는 왕자들의 권력욕뿐 아니라, 타잉화 출신의 무장인 개국공신들과 왕이 중앙집권을 위해 힘을 실어주려 한 탕롱 출신의 유학자 문관들의 세력다툼이 근저에 깔려 있었다. 2대 황제 태종(太宗)은 즉위 당시 겨우 11살 어린이였다. 태종은 아버지 레러이의 충신인 레쌋을 섭정으로 임명하고 모든 것을 의지했다. 레쌋은 피 흘려 세운 왕조에 무임승차한 눈엣가시 같은 문신들을 차근차근 제거하고 자기 측근들로 대체했다. 레쌋과 그의 후임자인 레응언 모두 무학자들로 유교보다는 어릴 때부터 익숙한 불교에 기울어져 있었다. 태종이 장성하자 개국공신들의 권력독점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문신들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는 유학..
2021.08.05 -
레러이 황제가 되다
명나라 식민세력을 베트남에서 몰아냈지만, 국제질서의 재정립과 피폐해진 국토의 부흥에는 그 뒤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레러이는 1428년 4월 스스로 황위에 올라 국호를 다이비엣(大越) 연호를 투언티엔(順天)으로 정했다. 레러이가 세운 왕조는 500년 전 레호안이 세웠던 레(黎)왕조와 구분하기 위해 후레(後黎)왕조라고 부른다. 레러이는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자신을 베트남의 왕으로 책봉해달라고 요청했다. 명은 이를 거부하고, 쩐왕조를 복원시키라며 쩐까오를 안남국왕으로 지명한 뒤 사신까지 보내 축하했다. 쩐까오는 레러이가 한 해 전 평화회담을 위해 급히 옹립한 허수아비 왕이었다. 불쌍한 쩐까오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졌음을 알고 달아나다 레러이의 부하들에게 붙잡혀 독약을 마셨다. 베트남에 큰소리는 쳤..
2021.08.04 -
쩐왕조의 비극적 종말
참파와의 전쟁은 끝났지만, 왕조를 지키려는 자와 바꾸려는 자들의 싸움은 이제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레뀌리는 태상황 예종(藝宗)을 부추겨 정적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거나 암살하거나 자결을 강요하는 등 갖은 방법으로 제거해갔다. 판단력을 잃고 휘둘리던 예종이 그나마 사망하자 레뀌리는 더이상 거리낄 게 없었다. 레뀌리는 임금인 순종(順宗)을 겁박해 1397년 수도를 탕롱에서 자신의 세력 근거지인 타잉화로 옮겼다. 그리고 천도 다음해 순종에게 이제 겨우 세 살인 태자를 왕위에 올리고 태상황으로 물러나도록 강요했다. 순종은 모든 요구에 순순히 따르며 목숨만이라도 부지하려 했지만, 이제 새 왕조를 꿈꾸는 레뀌리는 권력에 위협이 될 작은 가능성마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퇴위한 뒤 도교사원에 들어가 있던 순종은 레..
2021.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