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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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1차 송나라 침략 (2) 명장 맹공의 분투
맹공이 이끄는 송나라군이 접근해오자 황주 인근에 진을 쳤던 몽골군은 서쪽 형주로 100km 넘게 이동해 감리현에서 도강을 준비했다. 장강 즉 양쯔강이 직선으로 길게 흐르고 양안이 모두 평야지대라 몽골군이 어느 쪽으로 건널지 송군이 예상하기 어려운 지역이었다. 몽골군을 추격해 강 남쪽에 도착한 맹공은 병사들에게 낮에는 부대 깃발과 군복을 수시로 바꾸고 밤에는 수십 km에 걸쳐 횃불을 피우도록 해 송군의 병력을 부풀려 보이도록 했다. 강 건너에 엄청난 대군이 기다린다고 생각한 몽골 병사들은 겁을 먹어 사기가 떨어졌다. 그리고 송군이 강을 건너 기습하자 제대로 맞서 싸우지 못하고 달아났다. 맹공은 몽골군이 도강을 위해 만들고 있던 선박 등 각종 장비들을 불태웠고, 기세가 오른 병사들을 독려해 몽골군의 요새 2..
2021.06.12 -
그곳에 가면) 호아루의 두 황제 사당
호아루의 옛 궁궐터에는 딘보린과 레호안 두 황제의 사당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딘보린의 사당은 본래 11세기에 지었다 허물어진 것을 17세기 인근 주민들이 뜻을 모아 재건했다. 사당의 정문 현판에는 ‘북문쇄약(北門鎖鑰, 쇠사슬 쇄 + 자물쇠 약)’이라는 글귀를 새겨 넣었다. 북쪽의 방비를 튼튼히 한다는 뜻이다. 사당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연꽃이 가득한 제법 큰 못이 있다. ‘반달연못’이라고 부른다. 사당은 세 개의 문을 지나야 본당에 이를 정도로 경내가 넓다. 본당 앞 제단과 이를 수호하는 용들의 조각이 참으로 섬세해 중세 베트남 건축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딘보린 사당에는 평일인데도 관광이나 참배를 온 사람들이 많았다. 1천 년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뒤 국가체제를 완성하고, 최초로 황제를 자처해 인..
2021.05.29 -
정신병자 후계자와 레 왕조의 종말
북방의 위협을 제거하고 내정이 안정되자 레호안은 그동안 미뤄왔던 남쪽 참파 원정을 단행했다. 참파는 딘보린 황제가 죽은 뒤 레호안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응우옌박을 도와 수군으로 베트남 수도 호아루를 공격하려다 패배해 물러났었다. 그래도 레호안은 송나라의 침략이 임박해오자 참파와 우호관계를 맺기 위해 사신을 보냈는데 참파 왕이 사신을 옥에 가두었다. 이에 격분한 레호안은 송과의 전쟁이 끝난 다음 해 참파를 공격해 수도 인드라푸라를 점령하고 사원과 궁전을 파괴한 뒤 수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왔다. 베트남이 참파에 가한 최초의 공격이었는데, 충격을 받은 참파는 수도를 남쪽 비자야로 옮겼다. 이때부터 참파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해 베트남의 남진에 끝없이 밀리다 17세기 이후 국가로서의 형태마저 잃고 소수민족으..
2021.05.27 -
야만스러워 보였던 황제
드디어 송나라와의 전쟁이 끝났다. 레호안은 2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황제가 시해되고 내전이 벌어지고 새 왕조를 열고 강국인 송의 침략까지 겪으며 모든 위기들을 극복해냈다. 송나라군을 국경 밖으로 몰아내고 수도 호아루로 개선한 레호안은 두옹반응아(楊雲娥)를 정식 황후로 맞아들였다. 기록에는 없지만 두옹반응아는 예쁜 구름이라는 이름만큼이나 아름답고 재능 있는 여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태생으로 당시 베트남 최남단 아이주의 부장(副將) 딸이라거나 딘보린과 같은 고향 출신이었다는 설이 엇갈리는데, 어느 쪽이든 집안의 힘으로 황후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신하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두 황제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후세 유학자들에게 악녀로 평가되었지만, 두옹반응아는 뛰어난 처세와 정치력으로 자녀들을 ..
2021.05.26 -
송의 어수선한 침략 준비와 레(黎) 왕조 수립
베트남이 내란에 빠지자 북쪽에서 송나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송은 딘 왕조와 우호관계를 유지해왔지만 베트남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까지 버린 것은 아니었다. 광서옹주지사 후인보가 수도 개봉에 베트남의 혼란상을 보고하고 “이는 하늘이 준 기회이니 놓쳐서는 안 된다”는 ‘취교주책(取交州策)’을 올렸다. 송 태종은 대단히 기뻐하며 후인보를 총사령관으로 한 베트남 침공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송나라 초기의 복잡한 정세가 작용해 원정군 운명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후인보는 개국공신이자 정계 거물인 조보의 여동생 남편이었다. 조보는 후주의 장군이었던 조광윤의 쿠데타를 기획했고 조광윤이 황제가 되자 재상에 올랐던 인물이다. 조보는 그러나 지나치게 독선적인 성격 탓에 관리들의 원성을 사고 ..
2021.05.24 -
딘(丁) 왕조, 의문의 종말
그러나 공고해만 보이던 딘 왕조는 내부의 균열로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딘보린의 장남 딘리엔은 통일전쟁에 혁혁한 공을 세운 유능한 군사 지도자로 누구나 그가 후계자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딘보린이 갑자기 막내아들 딘항랑을 태자로 책봉했다. 이때 항랑의 나이는 아무리 많아도 다섯 살이 채 안 되었다. 이제는 노인이 된 딘보린이 불손한 장남에 대한 불만과 늦동이에 대한 지나친 사랑 때문에 판단이 흐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장차 자신의 미래마저 걱정하게 된 딘리엔은 분노했다. 이때부터 딘 왕실에는 이해하기 힘든 비극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베트남 사서들은 979년 딘리엔이 부하들을 보내 태자 딘항랑을 암살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참사가 벌어진 뒤에도 딘보린이 장남의 반역을 처벌하거나 딘리엔이 권력..
2021.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