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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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파를 만만히 보았다가
몽골은 먼저 베트남 남쪽의 참파부터 공격했다. 몽골은 참파에 행중서성(行中書省) 즉 중앙정부기관인 중서성의 출장소를 설치했다. 이는 남해무역을 장악하고 장차 벌어질 전쟁에 필요한 식량과 병력을 차출하겠다는 의도였다. 베트남을 고립시키고 남북에서 동시에 공격하겠다는 군사적 목적도 있었다. 멀쩡한 남의 나라에 지방관청을 설치했으니 참파가 두 눈을 뜨고 이를 지켜볼 수는 없었다. 인적 물적 수탈은 물론 자칫 국권까지 그대로 넘어갈 판국이었다. 하릿지 태자 등 참파의 강경파들이 몽골 관리들을 체포해 감옥에 가두었다. 격분한 몽골은 즉시 원정군을 보냈다. 쿠빌라이는 송나라 정복에 공을 세우고 천주 성주로 봉해져 있던 소게투를 차출해 지휘를 맡겼다. 1282년 음력 12월, 350척의 배에 나눠 탄 만여 명의 몽골..
2021.06.18 -
싸우자는 몽골, 피하려는 베트남
송나라가 마침내 무릎을 꿇자 이제 다음 목표는 베트남이었다. 쿠빌라이 대칸이 젊은 시절 대리국을 정복하면서 화려한 군사 경력의 막을 열었기 때문에, 그때 고락을 같이 했던 운남 주둔군은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 군대가 베트남에서 겪은 패배를 쿠빌라이는 자신의 치욕으로 여겨 복수하고 싶어 했다. 그런 개인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몽골에게는 동남아시아로 정복지를 넓혀 갈 전진기지로서 베트남이 꼭 필요했다. 베트남을 속국으로 만든다면 열대지방의 기후와 지형에 익숙한 현지인들을 용병으로 징발할 수 있고, 바다에 서툰 몽골군의 약점을 베트남 수군으로 보완해 남중국해를 지배할 수 있었다. 베트남의 입장에서는 몽골에 패할 경우 경제적 수탈에 그치지 않고 전쟁도구로 내몰려 소모될 운명이었기 때문에 민족의 존망을 걸고 저..
2021.06.18 -
몽골의 3차 송나라 침략 (2) 경제대국의 멸망
양양 방어선이 무너지며 이제 송나라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에 불과했다. 쿠빌라이는 양양성을 점령한 다음해 최측근인 바얀에게 20만 대군을 주어 송의 수도를 향해 진격하도록 했다. (1274년 9월) 출정 전에 쿠빌라이는 바얀을 불러 “짐의 백성들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제 송의 땅을 점령의 대상이 아닌 통치의 영역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바얀은 쿠빌라이의 뜻에 따라 연도의 백성들에게 식량과 약까지 나누어주었고, 점령지 백성들은 약탈자에서 갑자기 보호자로 바뀐 바얀의 군대를 ‘왕자의 군대’라고 부르며 환영했다. 가사도는 송나라에 남아 있던 사실상 모든 병력인 13만 명을 긁어모아 장강 하류인 무호로 출진했다. 가사도는 어떻게든 이 병력으로 몽골군을 저지할 방도를 찾는 대신, 바얀에게 사신..
2021.06.17 -
몽골의 3차 송나라 침략 (1) 고립된 양양
내전을 수습한 쿠빌라이는 다시 송나라로 관심을 돌렸다. 송나라 정복은 자신이 떠맡은 역대 대칸들의 숙원사업일 뿐 아니라, 이를 완수한다면 아직도 마음으로 승복하지 않는 몽골 내 경쟁세력들에게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기도 했다. 그 사이 송의 수도 임안에서는 어린 황제가 즉위하고 가사도가 독재 권력을 굳히고 있었다. 가사도는 재정을 긴축하고 통화개혁과 공전법을 실시했으며 부패한 장군들을 처벌하는 등 정치인으로서는 어느 정도 재능을 발휘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압도적인 적에게 맞설 지도력이 없었던 것은 물론, 국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경쟁자인 장군들에게 권한을 넘길 용기조차 없었다. 가사도는 다음 전쟁의 양상도 과거와 똑같을 것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 준비했다. 몽골 지도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송나라 ..
2021.06.17 -
몽골의 2차 송나라 침략 (2) 왕위 쟁탈전
몽케 대칸이 죽고 몽골군의 철수가 시작되자 송나라 동부전선에서 싸우던 쿠빌라이는 마음이 빠짝 타들어갔다. 자신이 중국에 그리고 동생 훌라구는 서아시아에 묶여 있는 사이 수도 카라코룸에서 쿠릴타이가 열리면 그곳을 통치하던 막내 아릭부케가 대칸으로 선출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당장 철수했다가는 운남성에서 올라오던 우량하타이가 고립될 위험이 컸다. 운남 주둔군은 얼마 전까지 자신이 지휘하던 부대였고 앞으로 벌어질 내전에서 큰 힘이 되어줄 병력이었다. 쿠빌라이는 운남 주둔군을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쿠빌라이는 송나라의 예상을 깨고 양쯔강을 건너 악주를 포위했고, 깜짝 놀란 송의 조정은 가사도(賈似道)에게 군사를 주어 이를 구원하도록 했다. 송의 원병 규모가 부담스러웠고 우량하타이도 어느 정도 북상해왔..
2021.06.16 -
몽골의 1차 베트남 침략 (2) 인내의 승리
몽골군은 쉽게 베트남 수도 탕롱을 점령했지만 텅 빈 도시에서 식량을 구하지 못해 굶주림에 시달린 데다 병사들 사이에 낯선 풍토병이 퍼지기 시작했다. 더구나 우량하타이는 시간이 없었다. 이제 곧 시작될 송나라 침공전에서 남쪽의 일익을 맡아야했기 때문이다. 베트남이라는 나라를 겁만 줘도 쉽게 굴복시킬 수 있는 남쪽의 야만인 부족쯤으로 여겼던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나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했다. 우량하타이는 사신을 보내 화의를 제의했지만 베트남은 단호히 거절했다. 적군의 초조함을 알아차린 베트남군이 반격을 시작했다. 남쪽으로 퇴각했던 베트남군은 몰래 홍강을 건너 탕롱 건너편에 있는 동보더우의 몽골군 주둔지를 공격해 점령했다. 비록 작은 요새였지만 개전 후 처음으로 베트남군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강..
2021.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