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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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1차 베트남 침략 (1) 무너진 방어선
우량하타이가 이끄는 몽골군은 베트남 국경을 넘어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왔다. 몽골군은 홍강과 로강을 따라 두 길로 나뉘어 남하했는데, 수도인 탕롱 서북쪽 약 50km 지점까지 접근하는 동안 전투다운 전투조차 없었다. 몽골군과 베트남 주력군은 홍강과 로강, 다강이 하나로 합쳐지는 비엣찌에서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쳤다. 베트남이 이곳을 본격적인 방어선으로 설정한 것이다. 몽골군은 주저 없이 강을 건너 베트남군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이때 전투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찾기 어렵지만 세계 다른 지역에서 몽골군이 사용했던 전술에서 유추한다면, 주력부대가 베트남군과 대치한 것처럼 기만술을 쓰면서 수비가 허술한 지점을 골라 도강한 뒤 베트남군의 측면을 공격했을 가능성이 크다. 야전에서 몽골 기병대가 자유롭게 기동할..
2021.06.14 -
베트남에 몰려오는 전쟁의 먹구름
베트남은 호라즘처럼 몽골 상인들을 학살하거나 버마처럼 멋모르고 몽골을 선제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몽골과의 충돌을 피하려 필사적인 외교 노력을 펼쳤다. 그러나 베트남이 애를 쓴다고 피할 수 있는 전쟁이 아니었다. 몽골의 몽케 대칸은 송나라에 대한 두 번째 침략을 시작하기 한 해 전인 1257년 운남 주둔군 사령관 우량하타이에게 베트남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베트남을 점령해 남쪽에서 송을 치는 또 하나의 공격로를 확보하고 베트남 군민을 대송전쟁에 동원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우량하타이는 국경에 3만 대군을 집결시켜 놓고 베트남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칠 것과 송을 공격할 길을 빌려줄 것을 요구했다. 이것을 사실상의 항복 요구로 받아들인 베트남 조정은 몽골 사신을 감옥에 가두고 전쟁 상태에 돌입했다. 베트남의 ..
2021.06.13 -
운남 대리국을 정복한 몽골
칭기즈칸에게는 여러 아들들이 있었다. 몽골의 전통에 따르면 막내아들이 아버지의 지위를 물려받아야 했다. 그러나 칭기즈칸은 용맹한 장수였던 막내아들 툴루이 대신 현명한 셋째아들 오고타이를 후계자로 선택했다. 칭기즈칸 사후 몽골 족장들은 이를 무시하고 전통에 따라 툴루이를 새로운 칸으로 선출했다. 툴루이는 2년간 임시 칸으로 있다가 아버지의 결정을 지키기 위해 형 오고타이에게 제위를 양보했다. 오고타이에 이어 그의 장남 귀위크가 어머니의 도움으로 몽골 제국의 제3대 칸이 되었다. 그는 현명하고 결단력이 있는 인물이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정적인 바투를 굴복시키기 위해 원정길에 올랐다 즉위 2년 만에 병사해 어떤 업적을 남기기에는 치세가 너무 짧았다. 귀위크가 죽자 툴루이의 막내아들 몽케가 칸의 자리에 올랐다..
2021.06.13 -
몽골의 1차 송나라 침략 (2) 명장 맹공의 분투
맹공이 이끄는 송나라군이 접근해오자 황주 인근에 진을 쳤던 몽골군은 서쪽 형주로 100km 넘게 이동해 감리현에서 도강을 준비했다. 장강 즉 양쯔강이 직선으로 길게 흐르고 양안이 모두 평야지대라 몽골군이 어느 쪽으로 건널지 송군이 예상하기 어려운 지역이었다. 몽골군을 추격해 강 남쪽에 도착한 맹공은 병사들에게 낮에는 부대 깃발과 군복을 수시로 바꾸고 밤에는 수십 km에 걸쳐 횃불을 피우도록 해 송군의 병력을 부풀려 보이도록 했다. 강 건너에 엄청난 대군이 기다린다고 생각한 몽골 병사들은 겁을 먹어 사기가 떨어졌다. 그리고 송군이 강을 건너 기습하자 제대로 맞서 싸우지 못하고 달아났다. 맹공은 몽골군이 도강을 위해 만들고 있던 선박 등 각종 장비들을 불태웠고, 기세가 오른 병사들을 독려해 몽골군의 요새 2..
2021.06.12 -
몽골의 1차 송나라 침략 (1) 경솔함이 부른 국난
금나라를 멸한 직후에는 몽골과 송나라의 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해도, 세계정복을 향한 몽골의 야심은 언젠가는 송을 침략 대상으로 삼았을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송의 섣부른 군사행동이 양국의 충돌을 앞당기고 말았다. 맹공이 금에서 개선하자 송은 축제 분위기였고 내친 김에 화북의 옛 영토를 되찾자는 강경파의 주장이 거세졌다. 특히 북송의 수도였던 개봉의 탈환은 국가적 숙원이었다. 송은 무려 20만 명을 동원해 북진했고, 텅 빈 개봉과 인근의 낙양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송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던 몽골이 이미 낙양에서 동쪽으로 200km 떨어진 동관에 속속 군대를 집결시키고 있었다. 송군은 갑작스럽게 출병하느라 군량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현지에서 조달할 생각이었는데, 풍요롭던 개봉 일대가 ..
2021.06.12 -
베트남은 전쟁을 준비했다
베트남에게 중국은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경계의 대상이었다. 면밀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정세 변화에 맞춰 시시각각 대응책을 세워야만 국가의 존립을 보장할 수 있었다. 그런 베트남이 화북에서 벌어진 몽골과 금나라의 사활을 건 싸움을 모를 리 없었다. 아직은 수천 리 떨어진 전란이었지만 언제든 그 불똥이 남쪽으로 번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베트남 위정자들의 마음속에 깃들기 시작했다. 쩐왕조는 방위력 강화에 박차를 가했다. 쩐왕조는 먼저 국경지역 소수민족들을 껴안으려 노력했다. 족장에게 공주를 시집보내거나 족장의 딸을 왕실에 맞아들이는 혼인정책으로 유대를 강화했다. 또한 족장들에게 관직을 주고 자기 부락을 마치 식읍처럼 장악할 수 있도록 허용해 환심을 샀다. 그래도 므엉족 타이족 등 저항하는 부족들은 무력으로 진..
2021.06.11